[50강_개화 VS 위정척사]
◯오늘의 호기심
-보빙사는 왜 미국에 갔을까?
-이만손, 퇴계 이황의 핏줄이 맞을까?
◯통상개화파
-박규수(박지원의 손자), 오경석(역관), 유홍기(의관)
-강화도 조약(1876)을 계기로 개화파↑(온건/급진)
-온건개화파(민씨 정권)
-인물 : 김홍집, 어윤중
-특징 : 친청파, 양무운동(중체서용)
-방법 : 동도서기
-급진개화파
-인물 : 김옥균, 박영효
-특징 : 친일파, 메이지유신
-방법 : 문명개화
◯위정척사파
-정=성리학, 사=서양세력
-1860년대 통상수교반대 : 이항로 → 척화주전
-1870년대 개항반대 : 최익현 → 왜양일체
-1880년대 개화반대 : 이만손 → 미국과의 수교 반대
-1890년대 의병투쟁
◯수신사
-통신사 → 수신사
-1차 수신사 : 김기수, 강화도 조약 논의
-2차 수신사 : 김홍집, 관세/개항장 논의
◯통리기무아문 설치와 개화 정책 추진
-통리기무아문(1880~82) 설치 : 12사(사대사, 교린사 등)
-2차 갑오개혁 때 부로 편입
-1881년
-별기군(신식군대:일본 교관이 훈련), 5군영→2영으로 축소
-조사시찰단(신사유람단, 일본에 파견) : 암행어사
-영선사(청나라로 파견) : 재정부족, 임오군란 → 중도 귀국
◯근대시설의 도입(신식 문물 설립)
-1883년
-전환국 : 화폐
-박문국 : 인쇄 → 한성순보(최초 신문)
-기기국(창) : 무기 제조
-1884년
-우정국 : 우편 업무
◯조선책략과 영남 만인소
-김홍집 : 조선 책략(방러←친중+결일+연미) 수입
-미국과의 수교 주장(→이만손의 영남만인소 사건)
◯조미수호통상조약(1882)
-관세O
-최혜국대우O
-거중조정
-서양 열강 중 최초 수교
-보빙사 파견(1883) : 조미조약 후 답방 형식
◯이것만은 꼭!
-온건개화파는 중국 (양무)운동의 (중체서용)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.
-급진개화파는 일본 (메이지)유신의 (문명개화론)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.
-개항 직후 개화를 총체적으로 컨트롤하는 (통리기무아문)이 있다.
-재정부족으로 중도 귀국한 사절단은 (영선사)이다.
-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최초로 (관세) 조항이 삽입되었다.
-김홍집이 가져온 (조선책략)에 대해 영남 유생들은 (영남 만인소)로 항의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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