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48강_대원군의 대외정책]
◯오늘의 호기심
-전근대의 강화도와 근대의 강화도는 위상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?
-척화비는 왜 세웠을까?
◯19세기 조선의 대외 상황
-서세동점 : 서양 세력(제국주의)이 동쪽으로 밀고 들어옴
-청나라는 영국, 일본은 미국에 의해 문호를 개방함
-청나라 : 양무운동(중체서용: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이자)
-일본 : 메이지 유신(문명개화론)
-1894년 청일전쟁 : 일본 승리
-조선 : 흥선 대원군 → 통상수교거부정책
◯병인박해(1866)
-러시아의 연해주 차지 → 흥선 대원군은 프랑스(선교사)를 이용해 러시아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 → 천주교 탄압 시작
◯병인양요
-강화도에서 프랑스와의 싸움, 외규장각 약탈
-한성근의 문수산성, 양헌수의 정족산성
◯제너럴 셔먼호 사건(1866)
-미국과 관련, 평양(박규수) 민가 약탈 → 화공으로 전소됨
◯오페르트 도굴사건(1868)
-오페르트(독)의 남원군(흥선 대원군 父)묘 도굴사건
-충청 덕산
◯신미양요(1871)
-강화도(초지진, 광성보)에 장수깃발
-어재진
◯척화비
-병인양요~신미양요
◯이것만은 꼭!
-병인양요의 원인은 (병인)박해였다.
-병인양요 당시 문수산성에서는 (한성근)이, 정족산성에서는 (양헌수)가 활약하였다.
-오페르트는 (독일)인이다.
-신미양요의 원인은 (제너럴셔먼호)사건이다.
-신미양요 직후 흥선 대원군은 전국에 (척화비)를 세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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