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53강_동학 농민 운동]
◯오늘의 호기심
-교정청과 군국기무처는 어떤 차이?
-농민군들은 우금치에서 부적을 부착하고 싸웠다는데 사실일까?
◯갑신정변 이후 외적 상황
-일본 : 미↔면 교환↑ → 수공업 몰락, 곡물 가격 폭등
-청나라 : 내정 간섭↑
-러시아 : 조러비밀협약
-영국 : 거문도 불법 점령(1885)
-反외세
◯갑신정변 이후 내적 상황
-개화 세력 위축
-동도서기 개혁 : 전신(85), 전등(87), 육영공원(86), 광해원→제중원(85), 한성주보(86) → 세금징수
-反봉건
◯동학의 확산
-反외세+反봉건 → 동학농민운동(1894)
-포접제 : 포(대접주) 밑에 접(접주), 피라미드 구조
◯교조신원운동
-최재우 死(←대원군)
-삼례집회(1892) : 종교적 요구
-보은집회(1893) : 종교적 요구+정치적 요구(척왜양창의)
◯1차 동학농민운동(反외세<反봉건)
-고부봉기 : 군수 조병갑의 학정(만석보 사건)
-세금징수 위해 보(만석보)를 또 만듦
-백산봉기 : 안핵사 이용태의 학정
-황토현/황룡촌 전투 승리 : 관군과의 전투
-전주성 점령 : 정부가 청에 SOS → 청군 상륙(아산) → (텐진조약) → 일본군 상륙(인천)
-농민군과 전주화약 체결 : 농민→집강소 / 정부→교정청
-집강소(폐정개혁안) : 신분제 폐지, 과부재가可, 토지균분 (←출처:오지영<동학사>)
-교정청
◯2차 동학농민운동(反외세>反봉건)
-일본군 : 경복궁 점령 → 청일전쟁(外) → 교정청X, 군국기무처(內)
-논산연합[북접(손병희)+남접(전봉준)] ↔ 공주 우금치(관군/일본군/민보군)
-실패함
◯동학농민운동의 의의
-갑오개혁에 영향
-지속적 항쟁으로 연결 : 활빈당 → 의병
◯이것만은 꼭!
-동학농민운동의 (포접제) 조직은 운동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.
-동학농민운동은 (교조신원) 운동에서 반봉건, 반외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.
-전주화약 이후 농민은 (집강소)를, 정부는 (교정청)을 설치하였다.
-2차 농민 봉기에서는 (남북접)이 연합하여 우금치로 향하였다.